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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버박물관 > 탈이란 무엇인가
 
현재 한국에는 가면극의 탈, 민속놀이의 탈, 무당굿놀이의 탈, 처용무의 탈 등이 전승되고 있다. 그리고 창덕궁 창고에서 발견된 방상시 탈은 궁중의 장례식 때 사용되던 것으로 보인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 양주별산대놀이, 제3호 남사당놀이의 덧뵈기, 제6호 통영오광대, 제7호 고성오광대, 제13호 강릉단오제에 속하는 강릉관노가면극, 제15호 북청사자놀음, 제17호 봉산탈춤, 제18호 동래야류, 제34호 강령탈춤, 제43호 수영야류, 제49호 송파산대놀이, 제61호 은율탈춤,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 제73호 가산오광대, 제81호 진도다시래기 등에서 탈이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 경북 예천의 청단놀음, 경북 경산의 자인팔광대놀이 등의 가면극에서도 탈이 사용된다.
민속놀이 가운데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농악대에 따라다니는 잡색놀이, 전남 무안의 용호놀이, 전남 진도의 도깨비굿 등에서 탈이 사용된다.
인 제주도의 입춘굿놀이, 경기도 양주의 소놀이굿, 황해도 평산의 소놀이굿,
동해안별신굿의 일부인 호탈굿(범굿)과 탈굿, 제주도의 영감놀이런말節쨀옆전상놀이, 황해도 배연신굿의 영산 할멈 할아범거리, 동해안의 광인굿, 전남 순천의 삼설양굿 등에서도 탈이 사용된다.
 
은 처용무에 사용되는 탈이다. 처용무는 197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처용탈 처용무는 신라 49대 헌강왕 때의 <처용설화>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고려려떼굼막?계승된 처용무는 궁중에서 잡귀를 쫓는 나례의 중심 의식무가 되었다. 고려시대의 처용무는 1인 또는 2인이 추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오방처용무로 확대되었다. 처용탈은 모란과 복숭아나무 가지를 꽂고 있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고, 복숭아나무 가지는 귀신을 쫓는 벽사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에서 사용하는 탈은 서민 배역이나 양반 배역이나 모두 탈 자체에 모자를 표현하지
않는다. 모자를 쓰는 배역은 별도의 모자를 착용한다. 탈은 이마 부분까지만 있다. 일부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경우에도 간단한 선으로 나타내고 있는 정도이다. 그래서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안면의 변화에 의해 나타낸다. 예를 들어, 봉산탈춤의 귀면인 팔먹중 탈을 보면, 오로지 안면의 표정에 의해 무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일본 노의 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국의 탈은 대부분 머리 부분과 얼굴 부분을 모두 이용해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한다. 탈 자체에 머리 부분의 모자나 왕관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탈에는 귀가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야류와 오광대의 탈에는 귀가 있다. 동래야류와 수영야류의 말뚝이 탈은 귀가 특히 과장되어 있다. 중국의 탈은 귀를 매우 잘 표현하고 있다.
한국 가면극의 탈은 신나는 춤을 추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제작되었다. 예전에는 탈의 눈 부분에 크게 구멍을 뚫어 놓아, 연희자가 밖을 내다보는 데 별 어려움이 없도록 한 경우도 있었다.
 
계통 가면극에 등장하는 탈들은 여러 가면극에서 공통된 모습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본산대놀이가 전파되면서 탈의 모습도 함께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인물에 따라 탈에 일정한 유형이 생겨났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취발이의 경우를 살펴보자. 현재 봉산탈춤ㆍ강령탈춤ㆍ양주별산대놀이ㆍ송파산대놀이에서 사용하는 취발이 탈은 물론이고, 1929년 수집된 양주별산대놀이 탈, 1930년대 후반에 수집된 구파발본산대놀이 탈, 서울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920년대 수집된 퇴계원산대놀이 탈 등의 취발이 탈도 공통된 모습을 갖고 있다. 즉 얼굴 바탕은 붉은색이고, 이마에 여러 개의 주름이 강하게 잡혀 있으며, 탈의 이마 윗부분에서부터 한 줄기의 긴 머리카락이 이마를 타고 내려와 늘어져 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탈이 섞여 있어도 취발이 탈을 금방 찾아낼 수 있다. 서울ㆍ경기ㆍ?황해도라는 지역적 차이와 1930년대와 2000년대라는 시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취발이 탈이 공통된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미 예전부터 취발이 탈이 일정한 유형을 이루고 있었고, 취발이 탈이 사용되는 이상의 가면극들이 모두 동일 계통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외에 노장 탈, 할미 탈, 영감 탈, 영감의 첩 탈, 샌님 탈, 종가집도령 탈, 상좌 탈, 소무 탈 등도 취발이 탈과 마찬가지로, 지역적ㆍ시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인물 유형을 이루고 있다.
첫째양반인 샌님 탈은 서울?경기의 별산대놀이와 해서탈춤에서 모두 흰 색 바탕의 얼굴에 쌍언청이의 모습을 갖고 있어서 다른 탈들과 쉽게 구별된다. 둘째양반도 대개 언청이탈인데, 언청이가 한 줄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이미 본산대놀이에서도 샌님 탈은 언청이 모습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강이천(1769~1801)이 1779년 남대문 밖에서 봤던 놀이를 읊은 한시 <남성관희자>의 뒷부분은 바로 본산대놀이를 묘사하고 있다. 이 시의 내용 중 “추레한 늙은 유생 이 판에 끼여들다니 잘못이지. 입술은 언청이 눈썹이 기다란데”라고 하여, 첫째양반인 샌님이 언청이에 눈썹이 긴 탈을 착용하고 있었음을 전해 준다. 이는 1929년에 수집된 양주별산대놀이의 샌님 탈(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과 현재 양주별산대놀이ㆍ송파산대놀이ㆍ봉산탈춤ㆍ강령탈춤ㆍ은율탈춤의 샌님 탈이 긴 눈썹에 쌍언청이 모습인 점과 완전히 일치한다.
 
에서는 양반탈이 모양반탈ㆍ홍백탈ㆍ흑탈ㆍ곰보탈 등 여러 병신 모습의 탈로
변이되어 나타난다. 여러 가면극에서 종가집도령 탈은 흰색 바탕의 얼굴에 얼굴과 코가 비뚤어진 모습을 갖고 있다.
반면에 동래야류에서 양반의 하인인 말뚝이는 탈 자체가 다른 인물 탈보다 훨씬 크고, 코가 이마에서 턱까지 내려올 정도로 클 뿐만 아니라 마치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갖고 있어서, 젊고 저항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그래서 양반을 위압하는 모습이다. 특히 1930년대 송석하 선생이 수집한 동래야류의 말뚝이 탈은 미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모습이다. 이 탈은 얼굴 바탕색, 남성 성기를 여실하게 본뜬 커다란 코, 큰 귀에 귓볼을 볼록하게 표현한 것 등 여러 면에서 형상화가 잘 되어 있다.
 
에서는 양반탈이 모양반탈ㆍ홍백탈ㆍ흑탈ㆍ곰보탈 등 여러 병신 모습의 탈로
변이되어 나타난다. 여러 가면극에서 종가집도령 탈은 흰색 바탕의 얼굴에 얼굴과 코가 비뚤어진 모습을 갖고 있다.
반면에 동래야류에서 양반의 하인인 말뚝이는 탈 자체가 다른 인물 탈보다 훨씬 크고, 코가 이마에서 턱까지 내려올 정도로 클 뿐만 아니라 마치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갖고 있어서, 젊고 저항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그래서 양반을 위압하는 모습이다. 특히 1930년대 송석하 선생이 수집한 동래야류의 말뚝이 탈은 미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모습이다. 이 탈은 얼굴 바탕색, 남성 성기를 여실하게 본뜬 커다란 코, 큰 귀에 귓볼을 볼록하게 표현한 것 등 여러 면에서 형상화가 잘 되어 있다.
 
탈은 검은색 바탕에 흰 점을 많이 찍어 놓았다.
이는 노장이 여러 해 동안 수도에 정진하느라고 무아의 경지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쌓인 파리똥이라고 한다. 이런 노장이 젊은 여자인 소무를 보고 흥을 억제하지 못해 파계하기 때문에, 노장에 대한 풍자가 더욱 재미있는 양상을 띤다.
 
가운데는 눈을 감았다 떳다 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된 것이 있다.
양주ㆍ송파ㆍ퇴계원별산대놀이의 눈끔쩍이 탈이 그것이다. 원래 눈끔쩍이 탈은 눈을 감았다 떴다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그래서 눈끔쩍이라는 이름도 생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를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퇴계원산대놀이의 눈끔쩍이 탈을 통해서, 눈끔쩍이의 원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한국 가면극의 은 서역인의 형상을 한 탈을 쓰고 술이 취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중국 안휘성 귀지의 나무 중 무회회는 한국 가면극의 취발이나 팔먹중처럼 서역인의 탈을 쓰고 연희하는 내용으로서, 상호 관련성을 보여 준다. 무회회는 호인취주형ㆍ호인무방형ㆍ호인무사형ㆍ호인용무형ㆍ호인헌보형의 다섯 유형이 있는데, 술 취한 호인(서역인)이 등장한다. 그래서 회회가 춤을 춘다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회회는 위구르를 포함하여 서역의 이슬람교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회회 즉 서역의 이슬람교도들은 색목인이 많고 복장도 특이하므로 외형상 쉽게 구분된다.
원진의 시에 “胡騰醉舞筋骨柔”라는 내용이 있듯이, 이미 당나라 때 취호등ㆍ취호자라고 하여, 술에 취한 호인이 등장하는 연희가 있었다.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호음주로 칭해졌다. 일본에 전해지는 두루마리 그림인 '신서고악도'에 무악의 하나로 호음주가 그려져 있는데, 분명히 서역인의 모습이다.
백제인 미마지가 일본에 전한 가면극인 기악의 취호는 취호왕이라고도 하는데, 정창원의 탈이나, 여러 사찰의 '자재장'에 의하면 취호왕의 탈 하나에 6명 혹은 8명의 종자, 취호가 부수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봉산탈춤에서도 취발이는 팔먹중들의 우두머리로 나타나고, 취발이와 팔먹중들은 모두 술해 취해 있으며, 그들의 탈은 모두 호인의 형상을 하고 있는 점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므로 중국의 가면극에 술에 취한 서역인인 회회가 등장하는 것과, 한국의 가면극에서 술에 취한 서역인 형상의 취발이와 팔먹중이 등장하는 것은 매우 오랜 내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 경우는 양반ㆍ선비ㆍ백정ㆍ중처럼 ?턱을 따로 만들어 끈으로 연결한 탈,
이매처럼 턱이 없는 탈, 초랭이처럼 하인이면서 입이 비뚤어진 모습의 탈, 중처럼 이마에 큰 혹이 있는 탈, 그리고 등장인물의 배역에 맞게 관상학적 측면을 살려 형상화한 탈 등 제작 기법과 형태 면에서 다른 가면극들과는 구별되는 조형적 특징을 많이 갖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중국 귀주성의 나당희탈 및 일본 노탈 등에서 하회의 탈들과 유사한 점들이 많이 발견되므로, 앞으로 이에 대한 비교 연구가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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